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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성민] 연인 (For. ㅌㅊㅍ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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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의 엄마는 올해로 이십이 년 경력의 여배우였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던 단역 생활 오 년을 제외한 나머지 십칠 년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그녀는 연예계에선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전문 배우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지만 제 남편에겐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아내였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녀는 이미 품절녀였고, 어린 딸인 현지도 있었다. 그리고 현지가 고작 네 살이었을 때 현지의 부모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삼 개월의 숙려기간마저 쓸데없이 길다고 생각할 만큼 둘의 사이는 멀어진 상태였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 이후로 더 승승장구해 현지를 혼자서도 잘 키워냈다. 현지는 그런 엄마를 둔 데다 알파로 발현되기까지 해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아이로 자랐고, 열여섯 살 때부턴 음악에 흥미가 생겨 연습생 생활을 했다.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연습생이라는 신분도 힘겨워하지 않았던 현지는 엄마를 빽으로 데뷔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까 봐 몇 달 만에 그 꿈을 접었다. 연습생임에도 이미 이도경의 딸로 유명했기 때문이었고, 물론 아직 이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열여덟 살, 유치원 시절 좋아했던 성민과 재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민은 오메가였다. 그것도 우성 오메가. 마찬가지로 오메가였던 엄마는 성민에게 절대 오메가라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오메가의 괴로움과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제 아들만큼은 힘들지 않게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편견 없는 아빠에게 성민은 마냥 예쁜 아들이었다. 페로몬 억제제는 비쌌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가 있겠냐며 막 사다 바쳤다. 오메가로 발현된 열일곱 살 이후부터 계속 그랬다. 성민의 엄마는 성민에게 공부를 강요했다. 오메가가 베타 혹은 알파인 척하며 살아가려면 적어도 어느 한 분야에선 가장 뛰어나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성민은 음악이 하고 싶었고, 그래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던 현지에게 저도 모르게 끌렸던 듯했다. 유치원 시절 애인 사이라 떠들고 다녔던 것을 계기로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새 학기 새 교실에 들어와 성민을 발견한 순간 현지는 성민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나 기억해? 백현지인데. 성민은 현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시절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잘나가는 여배우의 딸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일 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되지 않는 우성 알파라는 사실만 해도 충분히 유명해질 만한 일인데, 거기다 유명 여배우 이도경의 딸에 연습생이라는 신분까지. 물론 연습생 생활을 관뒀다는 소문이 또 퍼지긴 했지만 어쨌든 현지는 꽤나 대단한 가십거리였었다.

 

 

 

1

 

 

 현지와 성민은 공통된 관심사 덕분에 금방 친해졌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함께 버스킹도 자주 했다. 현지는 성민을 베타라고 생각했다. 전교 일 등이라는 타이틀과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페로몬 억제제 덕분이었다. 함께 어울린 지 몇 달 지났을 즈음, 성민에게 주기보다 조금 더 일찍 히트싸이클이 찾아왔다. 수업 중 갑자기 뜨거워지는 몸이 성민은 당황스러웠다. 바로 옆엔 우성 알파 현지가 있었고, 제가 알기론 이 교실 내에 알파 한 명이 더 있었다. 어쩌면 선생 또한 알파일지도 몰랐다. 학교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지만 성민은 점점 차오르는 숨에 못 이겨 책상 위에 엎드렸다. 사실 현지의 시선이 따가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성민은 최대한 숨을 참으며 현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만약 현지가 오메가에 거부감이 있다면 앞으로 저와 현지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물론 성민 혼자만의 괜한 걱정이었다.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십 분이 채 안 되어 울린 종소리에 성민은 벌떡 일어나 가방을 뒤져 약통을 꺼낸 후 뒷문 밖으로 달려나갔고, 현지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사라져버린 성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저처럼 성민이 사라진 쪽을 보고 있는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자리에서 일어섰고 거의 동시에 현지도 일어섰다. 현지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씨발, 안 비켜?”

 “너 같으면 비키겠냐?”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섣불리 덤비진 않았다. 열성이구나, 현지는 생각했다. 얼른 앉아라. 성민에겐 단 한 번도 들려준 적 없었던 쫙 깔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 현지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성민의 자리였다. 가방 반대쪽에 걸린 체육복 가방을 들어 올려 그 안에서 성민의 체육복을 꺼냈을 때, 성민이 뒷문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성민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문득 들었다가 제 책상 앞에 서 있는 현지를 보고 움찔했다. 서로 좋아했던 유치원 시절의 감정 따위는 현재와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지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움찔한 성민이 그 시선을 돌리려는데, 몸을 피할 새도 없이 앞으로 다가온 현지가 성민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방금 꺼내 들었던 체육복이었다.


 “…뭐, 망신 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너 젖었…을 것 같길래.”

 “……. ”


 갈아입고 와, 성민이 체육복을 받아 들었다. 솔직히 나 네 페로몬 향 맡고 나도 나올 뻔했어. 현지의 말에 성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현지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냥, 그런데도 꾹 참은 거라고.

 

 

 

2

 

 

 아이들이 하나둘 제 자리를 채워갈 때쯤, 문제집을 풀고 있던 성민에게 누군가 다가와 책상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무스로 앞머리를 죄 올리고 귀에는 교칙에 어긋나는 피어싱을 한, 느끼하게 생긴 남자였다. 아직 다 못 외운 탓에 이름은 모르지만 알파라는 소문은 들었었다. 성민아 안녕?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남자의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 같아 성민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오늘은 냄새가 안 나네? 성민은 쥐고 있던 샤프를 놓고 몸을 조금 뒤로 물렸다. 하지만 남자는 성민과의 거리를 좁히지 않았고 심지어 등이 걸상 등받이에 닿아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졌음에도 계속 다가왔다. 얼굴 앞에서 고개를 살짝 꺾은 남자가 성민의 목 부근에 코를 대었다. 아직 히트싸이클로 인한 불안감이 있어 밀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꾹 감는 성민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가리 안 치우냐? 현지가 남자의 몸을 세게 밀어내며 말하자 남자는 성민에게서 물러나 일어섰다.


 “이래서 열성이 더럽단 소릴 듣는 거야.”

 “뭐?”

 “맞잖아, 아무 데서나 함부로 좆 세우고 다니는 거.”


 눈을 내리깔고 남자의 중심 부근을 슬쩍 바라보는 현지의 행동에 성민은 물론 관심 없는 척하며 몰래 듣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까지 모두 그곳으로 쏠렸다. 씨발, 눈 안 깔어?! 현지를 노려보던 남자는 아이들에게 대뜸 소리치곤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히힛, 저를 올려다보는 성민과 눈이 마주친 현지는 애교 섞인 웃음소리를 내며 브이를 그려 보였다.




3



 성민의 우려와는 달리 현지는 오히려 성민과 더 가깝게 지냈다. 페로몬 억제제 챙겨 왔어? 같은 질문은 이제 인사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였다. 열성 알파라던 남자는 그 후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성민은 오메가임이 들통났지만 현지 덕분에 딱히 어려움을 겪지 않고 멀쩡히 다닐 수 있었다. 사실 성민은 현지의 태도에 가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현지와는 뭣도 모르는 어린 시절 사귄다고 떠들어댔던 소꿉친구, 딱 그뿐이었는데도.


 [ 너 왜 안 나와 ] 오후 7:26


 알파라고 해서 히트싸이클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 흥분감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로 열성과 우성이 나뉘었다. 알파의 히트싸이클은 대략 몇 시간 정도 지속되는데, 열성은 본능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 거의 참지 못하는 반면 우성은 잘 참는 편이었다. 현지 또한 고개를 든 성기를 건드리지 않고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오메가인 성민과 함께 하다 보니 욕구가 심하게 쌓인 모양인지 오늘은 특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벨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예전에 몰래 녹음해 둔 성민의 노래였다. 성민일 게 뻔해 현지는 핸드폰 커버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숨소리를 들려주면 들킬 것이 분명했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벨소리가 끊기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카톡 알림이 울렸다. 그제야 핸드폰을 든 현지가 상단바를 내려 새 메시지를 눌렀다.


 [ 나 오늘 ㅁ ] 오후 7:26


 답장을 보내려는데 순간 열이 오르는 듯한 기분에 그만 핸드폰을 놓쳐버렸다. 현지는 손에서 떨어지기 직전 액정에 손가락이 닿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전송 버튼이 눌린 뒤였다. 아, 썅……. 노란색 1이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는 것을 보며 현지가 작게 중얼거렸다. 전화받아, 새 메시지가 뜨더니 곧바로 통화 창이 나왔다. 당연히 받지 않았음에도 성민은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울리는 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 뭔 일인지 알 것 같으니까 일단 전화받아 ] 오후 7:45


 그러다 조금 오래 조용하다 싶더니, 메시지가 왔다. 현지가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거친 숨소리를 애써 감추며 결국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현지 쪽에서도, 건너편에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괴로워? 먼저 침묵을 깬 건 성민이었다. 최대한 숨을 죽였는데도 건너편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잠시 웃은 현지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괴롭지. 너 때문에 더.”

 - …….

 “하아…… 그러게 왜 전화받으라고 했어.”

 - …….

 “목소리 듣고 더 꼴렸어, 지금.”


 …갈까? 핸드폰 건너편에서 성민이 물었다.


 “오지 마.”

 - …….

 “너 오면 큰일 나. 참을 자신 없어.”

 - 근데 나 이미 집 앞이야.




4



 “흐읍… 흐……,”


 엉덩이는 바짝 추켜올려져 있고,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한 상태로 성민은 흔들리고 있었다. 중간에 힘이 풀려 상체가 조금 무너진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자세는 성민이 고집한 거였다. 얼굴 보고 하는 건 민망할 것 같다고, 온 방 안에 퍼진 알파 페로몬 때문에 부들거리는 손으로 제 겉옷을 벗으며 성민은 말했었다. 그리고 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위로 올라오는 성민의 바지를 벗겼다. 사실 현지는 엎드린 성민을 보면서도 한동안 망설였다. 준비 안 되어 있었던 거면 나 여기 안 왔어, 성민이 재촉하고 나서야 현지는 그 뒤에 제 것을 넣을 수 있었다. 성민의 상체보다 조금 긴 니트는 죄 말려올라가 척추선이 있는 등허리가 드러난 채였다. 니트의 소매 또한 길어 성민의 손등을 덮었다. 후윽, 흡, 응… 성민은 그 소매를 입에 물며 신음을 참았지만 이따금씩 차마 숨기지 못한 신음이 숨소리처럼 튀어나왔다. 성민의 뒤를 찌르는 현지의 성기는 그동안 참은 것이 한이었다는 듯 끝도 없이 단단해지기만 했다. 알파 페로몬에 반응해 저절로 흘러나오는 성민의 페로몬, 동글동글한 정수리, 매끈한 등허리, 유난히 도드라지게 올라온 엉덩이. 이 와중에도 성민의 모든 것이 야하기만 해 현지는 괴로웠다. 성민은 제 양쪽 옆구리를 붙잡는 현지의 손길에 놀라 한 쪽 손을 들어 니트를 끌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현지는 짝 소리가 나게 때리는 것으로 성민의 손을 제지했다.


 “아응… 아, 왜 때려어……. ”

 “내리지 마. 지금이 예뻐.”

 “아, 무슨, 뭐가 예쁘…… 흐으응!”


 말을 하려고 소매에서 입을 뗀 틈을 타 세게 박아 넣자 성민의 입에서 하이톤의 신음이 터졌다. 제가 낸 소리에 제가 놀란 성민이 재빨리 니트 소매를 다시 물어보려 했으나 이번엔 현지가 빨랐다. 동그란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 고개를 들게 한 현지는 제 것을 쾅쾅 박았고, 방해물이 사라진 성민의 입에서는 필터링 되지 않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성민은 현지보다 먼저 사정하며 마치 제 히트싸이클이 온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히 현지의 히트싸이클 때문에 맺게 된 관계인데 오히려 제 페로몬이 더 짙은 것 같았다. 한참을 박아대던 현지가 성민의 머리카락을 놓더니 다시 양쪽 옆구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노팅 했다. 난생처음 맺는 관계임에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던 성민도 노팅은 괴로웠는지 침대 시트를 구겼다. 흐아앙! 흣, 응… 아읏… 숨넘어갈 듯 희미하게 신음하는 성민을 잠시 기다려주며 현지는 성민의 옆구리에서 엉덩이까지 손을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성민이 숨을 어느 정도 고르고 나서야 사정했다.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사정 뒤에, 나른함이 찾아왔다. 성기를 빼고 성민의 옆으로 미끄러져 눕자 성민 또한 무릎을 미끄러뜨리며 엎어졌다. 하아, 하아. 성민은 제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로, 현지는 그런 성민을 바라보고 있는 채로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혔다. 몸이 안정되었을 즈음, 현지가 손을 뻗어 성민의 귓가와 옆 머리를 쓸었다.


 “…아팠어?”


 현지의 물음에 고개를 든 성민이 현지와 눈을 마주치자 현지가 씩 웃었다. 고개는 현지를 향한 채 다시 팔을 벤 성민이 잠시 침묵하다가 남자한테 뭔 예쁘다는 소릴 해, 하고 딴 소리를 했다. 뾰로통해 보이는 성민의 표정에 환하게 웃은 현지가 뺨을 잡고 얼굴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입술이 맞닿은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곧바로 혀도 침입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성민의 혀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자 결국 입술을 떼어냈다. 현지는 땀에 젖어 들러붙은 앞머리를 떼어주며 싱긋 웃었다가 입을 열었다.


 “예쁜 거 맞아. 너 예뻐.”

 “야, 너 진짜……. ”

 “아무튼, 너 키스 연습 좀 해.”




5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지의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옆자리가 텅 비어 있었더랬다. 허리도 아프고 뒤는 더 아팠던 성민은 왠지 몸을 바친 기분이 들어 우울해진 상태로 겨우 일어나 씻고 터덜터덜 걸어 제 집으로 갔다. 어딜 갔었길래 안 들어왔느냐 따져 묻는 엄마에게 말없이 고개를 내저은 후 교복만 챙겨 입고 다시 집을 나와 등교를 한 것이었다. 


 “자, 이거.”


 아침의 침대와 마찬가지로 비어있는 제 옆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문제집을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현지의 목소리가 들렸고, 새하얀 약병이 문제집 위에 놓이며 시선을 끌었다. 약병을 내려놓은 손을 따라 고개를 드니 현지가 저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노팅 한 거……. 피임약.”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나자마자 나갔었는데 문 연 약국이 없더라고. 그래서 오래 걸렸어. 미안. 현지의 변명에 언제 우울했냐는 듯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내 힛싸 아니면 확률 거의 없는데. 성민이 픽 웃으며 중얼거리자 현지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다 …아, 그래? 하고 민망하다는 투로 말하곤 헤헤 웃었다.




6



 성민은 가쁜 숨을 달래며 두 팔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또 주기보다 일찍 찾아온 히트싸이클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이번엔 수업시간이 끝나기까지 삼십 분도 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지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베타라는 사실과, 수업에 여념이 없는 선생 또한 베타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삼십 분이 넘는 시간을 그대로 참았다간 베타인 아이들 사이를 기어 다닐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었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약 먹으러 다녀올까 생각하던 중, 현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쌤! 성민이 아프대요!”

 

 칠판에서 눈을 떼고 성민을 돌아본 선생이 놀란 눈을 하며 얼른 양호실에 데려가라고 했다. 현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성민을 애써 부축해 교실을 나섰다. 성민의 페로몬은 감춰져 있는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로 진했지만 현지는 성민이 복도에 그대로 쓰러질까 필사적으로 페로몬을 감췄다. 현지에게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을 겨우 떼던 성민은 뒤늦게야 약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지야, 나… 나 약… 현지를 멈춰세우며 다급히 말하는 성민과는 달리 현지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의도했던 것이라는 듯, 너 내가 풀어줄 건데?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제 히트싸이클이 왔던 날 전까지만 해도 성민을 지켜주고 싶었으나 한 번 맛보고 나니 참을 수가 없어진 탓이었다. 지금도 성민은 현지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신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고 있을 게 분명해 현지는 이렇게 몇 초가 지체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현지의 뻔뻔한 말에도 반박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애가 타는 건 성민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널 위해서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현지는 다시 성민을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거봐, 어차피 약 먹었다고 해도 소용없었을걸.”

 현지와 성민이 도착한 곳은 양호실이 아닌 복도 끝에 위치한 빈 교실이었다.​ 사실은 거의 버려진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작년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비워진 것인데, 자물쇠는 없지만 드나드는 사람 또한 없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현지는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책상을 제 교복 소매로 한 번 쓸어낸 다음 성민을 기대게 했다. 현지가 손을 놓자 그대로 미끄러져 주저앉은 성민은 일어나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제 바지 버클에 손을 댔다. 바지 색이 진해 티는 나지 않았지만 사타구니 부근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흐응, 아아…… 지퍼를 내리다가 제 성기가 자극되자 성민은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를 쫓아내려 창가로 갔던 현지는 성민의 신음소리에 재빨리 다가서며 말했다. 성민은 아무 대꾸도 없이 바지를 끌어내리려다가 자세 때문에 막혔는지 헛손질을 했다. 결국 현지는 성민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운 뒤 제가 대신 바지를 내려주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킷 벗기를 유도하며 넥타이를 빼는데도 성민은 반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조끼를 벗고 와이셔츠 단추도 풀었다. 땀에 절어 더운 모양이었다. 이마에 죄 들러붙은 앞머리를 보는 순간 현지는 자제할 수가 없어졌다. 그건 벗지 마, 와이셔츠를 벗으려는 행동을 막은 현지가 성민을 책상 위로 밀어 눕혔다. 성민은 제 자세가 민망한 줄도 모를 만큼 흥분한 것 같았다. 애써 막고 있던 페로몬을 내보내자 성민이 사정했다. 희미하게 복근이 있는 배에 하얀 정액이 튄 것을 본 현지 또한 벌써 사정할 것만 같았다. 쾌감에 들떠 고개를 젖힌 덕분에 땀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성민의 목이 훤히 드러났다. 모습을 드러낸 제 성기의 사정감을 애써 참으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지만 오메가 페로몬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해졌다. 후…… 씨발…, 현지가 낮게 중얼거리자 성민이 풀린 눈으로 현지를 바라봤다.


 “왜, 욕해……. ”

 “네가 너무 야해서.”


 현지는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성민의 양 다리를 붙잡아 벌리며 책상 위로 올렸다. 검은색의 발목 양말 위로 보기 좋을 정도로 그을려진 다리, 다른 부분에 비해 하얀 허벅지와 사타구니. 그 사이에 자리 잡고 또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성기와, 애액이 새어 나와 반짝거리는 애널. 현지는 한 쪽 팔을 뻗어 성민의 눈을 가린 뒤 제 것을 꺼냈다. 곧바로 구멍 입구에 갖다 대자 성민의 발가락이 접히는 게 보였다. 히잇…… 구멍은 천천히 밀어 넣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였다. 성민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들뜬 듯 제 눈을 가린 현지의 팔을 붙잡았다.


 “흐응…, 현지야, 움. 움직여 줘…… 얼른….”


 나 간지러워 지금…… 제 히트싸이클을 약 없이 보내는 것이 처음이라 자제력 없는 성민은 느낌 그대로를 내뱉었다. 성민의 몸은 열에 들떠 벌갰고, 현지는 입모양으로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쾅쾅 박아 넣기 시작했다. 하아앙! 흣. 으앙! 신음을 막을 생각조차 않은 채 성민은 목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머릿속 한구석조차 차지하지 못했다. 현지는 제 히트싸이클이었던 저번보다 성민의 히트싸이클인 지금이 더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성민아, 나, 후. 지금이 내 힛싸 때보다 더 좋은 것 같애……. ”

 “흐응, 앗. 흣, 나… 나도……. 하읏!”

 “…노팅 하면 안 되지 않아?”


 안 되는데, 흐으읏, 응… 돼……. 뭐라는 거야, 횡설수설하는 말에 어찌해야 할지 갈등하던 현지는 결국 노팅을 했다. 흐아앗! 성기가 커짐에 따라 성민의 신음도 한 층 높아졌다. 애널은 두 배로 커진 성기를 바짝 조여왔고, 현지는 머지않아 사정했다.


 “성민아, 후희는 키스로 해야 하지 않아?”

 “……어?”


 키스 연습은 했냐고. 둘은 각각 책상 한 개씩을 차지하고 걸터앉아 있었다. 현지의 말에 성민은 얼굴을 붉히다 고개를 작게 저었다. 너 아니면 누구랑 해……. 거의 속삭이다시피 한 말을 용케 알아들은 현지가 아아, 그렇지. 하며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키스는 말고, 뭐 준비했던 건 있어?”


 현지의 물음에 성민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얼굴 사이의 간격을 좁혀갔다. 그리고 곧 현지의 이마에 성민의 입술이 닿았다. 뽀얀 먼지가 떠다니고 있는 낡은 교실이었으나 둘의 분위기는 핑크빛이었다.




7



 두 줄. 한가득 사온 테스트기를 죄다 써 봤지만 결과는 모두 두 줄이었다. 현지와의 관계는 만족스러웠었다. 하는 동안엔 흥분감에 당장이라도 몸이 무너질 것 같아 힘들었지만, 약을 써서 억지로 가라앉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운했고 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졌더랬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일 피임약을 먹었다. 하지만 그 피임약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두 줄이라니. 성민은 테스트기를 떨구며 고개를 푹 숙였다.




8



 다음날 성민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현지가 몇 번이나 무슨 생각을 하느냐 물어봤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하굣길, 제 집 앞에 도착해서야 성민은 현지를 붙잡았다. …나 두 줄 나왔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서서히 이해가 되어 가는지 점점 눈이 커졌다가, 완전히 깨달은 듯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리는 그 과정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디테일했다. 고개를 떨군 채 애 지우려면…… 하고 조용히 말하던 성민은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놀라 현지를 바라봤다. 정확히 흐어엉……, 하는 소리가 났다.


 “현, 현지야.”

 “허엉……, 나 때문에……. ”


 흐어엉…… 내가 네 부모님께는 잘 말씀드릴게… 나 튼튼해서 몇 대 맞아도 끄떡없어…… 허어엉…… 울음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말들에 성민은 정신이 어찔할 지경이었다. 정말 불쌍하지만 지워도 되고… 사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벌써부터 이렇게 울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성민은 이 모든 말을 그저 조용히 삼켰다. 제 몸속에 새 생명이 자리 잡았다는 소식은 저도 충분히 당황스러웠고, 지금 울고 싶은 건 오히려 내가 아닌가 성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오열하다시피 하는 현지를 보니 눈물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사랑해 성민아, 울음 끝에 튀어나온 현지의 고백에 성민은 결국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어야만 했다. 나 지금 사랑한다는 말에 넘어가도 될까…… 얘 믿어도 되나…… 성민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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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은 전개가 저렇게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쓴 건데…

취향 타는 소재라 조금만 넣고 말았어요 어차피 그럴 계획이기도 했구…

늦어서 죄송하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즐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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