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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민] 유화가인담柔華佳人談 02 柔華佳人談육민 청색 도포가 미시의 햇살 아래 쨍하게 빛났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는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시절부터 지겹도록 배워온 것이라 이젠 완전히 몸에 배어 양반, 혹은 그 이상의 품위를 한껏 내보이고 있었다. 자색 도포를 걸친 호위무사가 그런 성재의 뒤를 따랐다. 왕을 지키는 무사로서 부여받은 의복은 물론이고 삿갓과, 제 분신이나 다름없는 칼마저 몸에서 떼어놓으라 이르던 성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기품이야 넘치게 있었지만 사실 그뿐, 성재는 한 나라의 왕이라는 신분에 맞지 않게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여 호위무사 일훈을 비롯한 신하들의 걱정을 사곤 했다. 이번엔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셨기에, 일훈은 성재 몰래 소맷자락에 넣어온 단검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대체 제 의복과 칼을 .. 더보기
* 월간민른 http://allminmagazine.wixsite.com/issue 민른전력 -> 월간민른 더보기
[섭민/식민] 난파선 01 난파선섭민식민섭 거대하고 단단한 문 앞에 선 창섭은 품 안의 긴 상자를 고쳐 안고 노커를 움직였다. 상어의 이빨에 물린 형상을 한 쇠고리는 잘 다듬은 목재로 이루어진 문과 부딪혀 청량한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자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육중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창섭을 맞이한 이는 장신의 기사였다. 사실 기사의 감정 없는 눈빛보다 총구가 먼저 그를 반겼지만 창섭의 정체를 확인하고 바로 그것을 치워냈으므로 그는 그것에 겁먹지 않기로 했다. 백구십을 웃도는 커다란 몸집은 곧 옆으로 비켜서 창섭이 들어갈 공간을 내주었다. 창섭의 눈에 휘황찬란한 내부의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처음 보는 곳은 아니었으니 얼빠진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창섭은 문지기처럼 문 양옆에 높게 세워진 백.. 더보기
[민ㅎ총수] 제목도 없고 개연성도 없이 떡만 있는 글 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육민] 유화가인담柔華佳人談 01 柔華佳人談육민 열매 달 보름날(9월 15일), 가을의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흐르고, 가을을 담아 푸른 하늘에서 햇살이 적당히 따사롭게 내려앉는 미시未時(13시~15시). “운종가는 혼자 돌고 싶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예, 그래서 다섯 걸음 더 뒤에서 걷고 있습니다.” 포근한 날씨가 기분 좋을 법도 했지만 성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그는 홀로 상점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가능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성재는 항상 불만을 품곤 했다. 반쯤 몸을 돌리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던 성재는 곧바로 들려오는 대답에 미간을 잔뜩 좁혔다. 억양 없는 딱딱한 목소리마저 괜히 거슬렸다. 온몸을 검게 물들이는 것도 모자라 갓으로 얼굴을 가린 데다, 허리춤엔 칼까지 차고 있으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