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

[육민] 그 집에 살다 (For. ㅇ님)

* ㅇ님 생일 기념! …인데 너무 늦었죠 ㅠㅠ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드려요♡









 어느 날부턴가 같이 살게 된 형이 있다. 며칠 후면 한 달 정도가 되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된 건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당연한 거였다. 대화 한 번 나눠보질 못했으니. 이름이 이민혁이라는 사실은 형의 등 너머로 봤던 노트를 통해 알게 된 것이고, 형이라는 호칭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을 근거로 고등학생은 아닐 거라 대충 추측만 한 결과였다. 나는 형과 대화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죄다 무시했기 때문이다. 형은 그저 제 할 일을 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었다. 나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혹시 잘못을 저질렀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 집에 살다
육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 옆엔 민혁이 형이 있다. 곱게 감긴 형의 눈꺼풀을 한 번 쓸어주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내 하루 일과의 가장 첫 순서였다. 그리고 나는 방 밖으로 나간다. 때마침 부모님은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친 상태고, 부모님과 나 세 사람은 숟가락을 손에 들며 식사를 시작한다. 메뉴는 언제나 똑같았다. 현미밥과 김, 갈린 소고기와 배추김치. 우리가 식탁을 치우면 민혁이 형이 나와 밥을 먹고, 부모님은 저들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는 민혁이 형을 똑같이 무시하며 텔레비전을 본다. 서로 아는 척도 안 할 거면 부모님은 왜 형을 이 집에 들인 것이며, 형은 왜 이 집에 사는 걸까. 나는 민혁이 형의 앞에 앉아 재잘재잘 떠들곤 했지만 형은 대꾸 한 번을 안 했다. 민혁이 형의 아침 식사 메뉴는 우리와 조금 달랐다. 우린 현미밥을 먹는데 형은 쌀밥이다. 언제는 김치 하나만 놓고 식사를 하고, 햄이나 계란말이를 해서 먹을 때도 있었다. 보통 형이 일어나는 시간에 따라 정해지는 듯했다. 오늘은 김치뿐인 밥상이었다. 김이라도 꺼내줄까? 내가 물어도 형은 묵묵부답이다. 괜히 목덜미가 간질간질한 걸 보니 나는 지금 민망한 모양이었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도 내가 좋으면 그만인 거였다. 민혁이 형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 그래서 나는 형이 나와 시선 한 번 마주쳐주지 않아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민혁이 형은 밥을 다 먹고 개수대에 그릇을 담근 뒤 곧장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그 소리가 끊기고 문이 열릴 때까지 욕실 옆의 벽에 기대어 서 있는다. 형은 남의 부모님이 계신데도 집이 편안한 모양인지 수건으로 가린 아래를 제외하곤 맨몸으로 나온다. 희미한 복근과 잔근육이 보이고, 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에선 선명한 척추선과 기립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잔근육과 기립근이 너무 멋있어서 언제 한 번은 형에게 운동을 얼마나 하느냐고 물어봤었다. 하지만 형은 그때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형의 뒤에 조금 바짝 붙어 팔을 뻗었다. 척추선이 느껴졌다. 형이 놀란 듯 재빨리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형, 형 근육 진짜 멋있는 것 같아. 기회다 싶어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형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뒷모습을 보였다. 나는 또 민망해졌다.

 민혁이 형은 흰색 폴라티와 검은 스키니를 입고 코트를 걸친 후 백팩을 한 쪽 어깨에 둘렀다. 멋내기 위해서인지 알 없는 안경도 쓴다. 입는 옷이 매일 바뀐다는 것을 빼놓고는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다. 현관으로 향하는 형을 따라가 신발을 신는 형에게 잘 다녀와, 하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다 실수로 신발장 위의 선반에 있던 플라스틱 장식품 하나를 떨어뜨렸다. 오늘은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몇 번이나 떨어뜨린 것이었다. 신발 끈을 묶던 형이 놀라서 그것을 쳐다봤다. 형은 눈을 떼지 않은 채 끈을 마저 묶고 바짓단을 정리한 뒤 장식품을 들고 일어나서는 제자리에 다시 올려두었다. 미안해, 또 떨어뜨려서. 아 자꾸 왜 이러나 몰라……, 내가 말했지만 역시나 형은 나를 무시하고 나가버렸다. 엄마, 민혁이 형은 왜 나를 자꾸 무시할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는 그저 날 한 번 슥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릴 뿐이다. 그제야 나는 부모님이 보고 있는 그것에 시선을 두었다.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 같은 여자가 여자 주인공 같은 여자의 뺨을 때리는, 흔하디 흔한 아침 드라마가 한창이었다. 저 여자는 매번 맞기만 하네. 나는 생각했다.

 민혁이 형은 항상 통화를 하며 집에 들어온다. 내가 형을 처음 봤던 날부터 쭉 그랬다. 웃음기 가득한 표정과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호기심이 막 생겼다. 느낌상 애인인 것 같았고, 나는 같이 사는 형의 그 애인이 궁금했다. 당연히 형은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무튼 형은 그랬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핸드폰이 귓가에 붙어있지 않았다. 표정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날 더 놀라게 했던 건, 발갛게 부어오른 형의 뺨이었다. 게다가 신발도 신발장에 기대어 겨우 벗고, 살짝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걸어가 침대 위에 털썩 엎드리는 것이다. 하아……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리고, 이내 형은 울었다. 왜 그래? 하고 묻고 싶었지만 눈치 없어 보일 것 같아 그저 가만히 입을 닫고 있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민혁이 형의 숨소리가 차츰 안정되었다. 잠든 모양이었다. …씻고 자야지, 형. 나는 깨우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크기의 목소리로 말을 하며 형의 옆에 조용히 누웠다.

 다음날 민혁이 형은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달려갔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 소리가 평소보다 거셌다. 저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걸까. 부모님은 민혁이 형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문 옆의 벽에 기대어 기다렸다. 사실 따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물소리 사이사이 형의 울음소리도 들려 차마 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걱정이 분노로 변하게 된 건 여느 때처럼 하체에 수건만 두르고 나온 형의 맨몸을 봤을 때였다. 가느다란 것으로 맞은 것 같은 자국이 상체에 가득한 것이었다. 가슴과 배, 등까지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민혁이 형은 근육이 있긴 하지만 체구 자체로 보면 작은 편이다. 뼈대도 굵지 않아 보였다. 때릴 곳도 없는 형을 대체 누가 때린 거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 형에게 누가 이딴 짓을 했냐고 마구 소리쳤다. 하지만 형은 대꾸하지 않은 채 지친 몸짓으로 방에 들어가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검은색 폴라티다. 축 늘어진 어깨 위에 가방을 걸친 형은 안경도 쓰지 않고 현관으로 나갔다. 형, 대체 왜 그래. 왜 울었어. 누가 때렸어? 왜 맞은 거야? 말해주면 안 돼? 신발을 신는 형에게 끈질기게 캐묻다가 팔을 잘못 휘둘러 또 플라스틱 장식품을 떨어뜨렸다. 형은 제 앞에 굴러떨어진 그것을 보았지만 이번엔 줍지 않고 그냥 일어섰다. 형의 손에 의해 도어록이 열렸고, 나는 문 밖을 나서려다 순간 휘청한 형을 보고 놀라 형에게 다가갔다. 일 층까지만이라도 데려다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성재야, 나가지 마. 텔레비전을 보던 아버지가 내게 말했지만 나는 형을 저대로 보낼 수는 없다며 쫓아 나갔다. 성재야! 부모님이 뒤에서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가면 안 돼! 뒤를 돌아보자 현관 앞에 서 계시는 부모님과 시선이 마주쳤다. 부모님의 손짓을 무시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어느샌가 민혁이 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있을 리가 없는 안개만이 자욱했다. 분명히 계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몇 걸음 떼어봤지만 계단은커녕 그 무엇도 없었고, 아무리 달려봐도 사방은 어둡기만 했다. 성재야!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얼른 뒤로 돌아 안갯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현관문을 향해 다급히 뛰었다. 저기 왜 저래?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문을 닫고 부모님에게 물었다. 나가면 안 돼, 단호하게 말하는 부모님의 얼굴 근육이 딱딱했다. 다시 소파로 걸어가 앉은 부모님은 보다 만 텔레비전을 이어서 보기 시작했다.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의 뺨을 때린다. 신발을 벗으려다 발에 무언가 채이는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민혁이 형이 줍지 않고 간 장식품이 보였다. 그것을 주워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민혁이 형은, 내가 또 치는 바람에 제 앞으로 굴러떨어져 버린 장식품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봤다. 어제 제가 올려두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날 이후 민혁이 형은 통화를 하며 귀가하지 않았다. 밝은 표정도 없고, 애교 섞인 말투 또한 없다. 그저 힘없는 모습으로 들어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흐느끼다 잠들 뿐이었다. 사실 형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상처를 달고 울어서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대체 누가 자꾸 때리는 거야, 나는 범인을 찾기 위해 형과 함께 나가보려고 몇 번 시도해 봤으나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여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바깥의 상태가 왜 그런 건지 궁금했지만 부모님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어쨌든 요즈음의 나는 아침마다 형의 뺨에 생긴 눈물자국을 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 자국 위에 입술을 찍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도 아침 메뉴는 똑같았다. 우린 왜 매일 똑같은 것만 먹어? 민혁이 형처럼 다른 것도 먹으면 안 돼? 나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봤지만 엄마는 그저 무시했다. 말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민혁이 형을 배웅하며 힐끔 본 텔레비전 속에선 또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왔다.

 이상하다. 민혁이 형이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이상했고, 그에 대해 말 한 마디 꺼내지 않는 부모님도 이상했다. 엄마 아빤 민혁이 형 걱정 안 돼? 사실 부모님은 민혁이 형과 잘 마주하지 않았다. 서로가 없어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처럼,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갑작스러운 형의 부재 탓에 규칙적으로 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침대 옆자리에 누워있던 사람이 없어 차가웠고, 부모님이 텔레비전을 볼 동안 나의 재잘거림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외로웠고, 욕실 옆의 벽에 기대어 기다릴 사람이 없어 허전했으며, 현관 앞에서 배웅해 줄 사람이 없어 나는 내 생활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 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루 종일 민혁이 형만 생각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오지 않을까 싶어 밤이 깊어져도 잠 못 자고 기다리기까지 했다. 나의 생활을 무너뜨린 민혁이 형이 다시 돌아온 건 이 주일 조금 지나서의 일이었다.

 나는 지난 이 주일과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마다 눈꺼풀을 쓸어주고, 눈물자국에 입 맞춰주어야 할 상대가 사라진 그 공간은 차디차게 식은 지 오래였다. 부모님에게 민혁이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포기한 건 일주일 정도 되었고, 그동안의 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그저 조용히 밥만 퍼먹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던 나는 오랜만에 들리는 도어록 소리에 깜짝 놀라 숟가락을 내던지고 달려갔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매우 빨랐고, 여러 번 틀렸다. 이렇게 사람 있는 집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계속 누를 정도면 민혁이 형인 것이 확실한데 왜 저러지. 이렇게 생각할 찰나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역시 민혁이 형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더 따라 들어왔다. 문을 닫으려 애쓰는 민혁이 형의 손을 쉽게 막아낸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민혁이 형이 바들바들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형은 양말만 신은 채였고, 남자는 제 운동화를 벗지 않고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가오지 마, 민혁이 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남자는 그저 픽 웃으며 계속 형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왜 도망가, 나랑 계속 같이 있었으면 될걸. 이런 귀신 들린 집이 좋아? 남자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민혁이 형을 바라보다 갑자기 발걸음을 빨리해 민혁이 형의 목을 움켜쥐었다. 형은 다급히 남자의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는 그저 힘줄이 서도록 형의 목을 조를 뿐이었다. 날 사랑하지 않은 죗값이야, 민혁아. 죽어가는 민혁이 형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민혁이 형이 날 무시해야만 했던 이유를 깨닫고 부모님처럼 행동했다. 죽어가는 민혁이 형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


-


 [ 일가족 살인사건 재현되었나…… 어제 아침, 약 두 달 전 갑작스럽게 죽임을 당했던 피해자 가족의 집에서 또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같은 장소라는 것이 오싹하지 않은가. 게다가 같은 물건이 자꾸 떨어지거나,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해 ‘귀신 들린 집’이라 불리는 그곳이라면 더더욱. ]


-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내 옆엔 민혁이 형이 있다. 곱게 감긴 형의 눈꺼풀을 한 번 쓸어주면 형은 눈을 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형이 배시시 웃는다. 그러면 나도 함께 웃어주며 인사한다. 잘 잤어? 형은 고개를 끄덕인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민혁이 형은 매일 같은 메뉴로 아침 식사를 한다. 부모님은 여전히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자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아침 드라마를 보고, 나는 여전히 민혁이 형에게 재잘거린다. 변한 건 민혁이 형뿐이었다. 

 

 

 

 

 

 

 

 

 

 

 

 

 

 

 

 -

마음에 안 드실 것 같지만… ㅇ님은 착하시니 이 망글도 좋게 봐 주실 거라 믿어요…

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