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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민] 원수라는 관계 안에 사랑하는 우리

 지금 이 순간, 난 처음이자 마지막 총알을 네게 날리려고 해. 왜 하필 나야, 라는 질문은 하지 마. 난 네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니까.


 -사랑해.










원수라는 관계 안에 사랑하는 우리

섭민, 창섭민혁










* * *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자자는 건데, 그것도 안 돼?”

 “그래서 안 되는 거지.”

 “그럼 사귀는 건?”



 열여섯의 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어린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좋아하긴 했다. 아버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줄곧 했던 나는 여자친구에 대한 것까지 아버지에게 모두 이야기했었다. 곧 100일이라고. 그리고 여자친구와 100일이 되던 날, 아버지는 날 억지로 범했다. 자연스레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후로도 2년, 어머니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사실을 알았다. 내가 어머니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돌았어? 우리 사촌이야.”

 “너희 아버지랑 넌 일촌이잖아.”



 외간남자와 만나느라 나 따위는 돌보지도 않았던 어머니는 결국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에 그 남자와 도망갔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는데도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형도 가출했는데, 아버지는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너랑 나만 있으면 돼, 내 바램은 그것뿐이야. 아버지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아빠와 아들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꺼져.”

 “이쯤 되면 좀 넘어와 줄 수도 있지 않아?”



 열일곱, 나는 첫사랑을 만났다. 끝이 예쁘게 말려들어간 단발머리의 그녀는 웃는 게 참 예뻤는데, 그것에 반했다. 자그마치 1년을 짝사랑했다. 열여덟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먼저 다가왔다. 너희 형 여자친구 없으면, 나 소개시켜 줄래? 하고. 우리 형은 우리 엄마 좋아해. 나의 대답에 충격받은 듯한 그녀를 보며 나는 울었던 것 같다. 형이 가출했던 그날 오전의 일이었다.



 “꺼지라고 했지.”

 “나랑 잘래, 나랑 사귈래?”



 그날, 야자가 끝나고 난 뒤였다. 모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교실과 복도가 텅 비었을 때쯤에야 나는 교실을 나왔다. 어두운 복도 한편에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교실 문을 닫기 전에 흘끗 본 책상 위의 가방 하나가 생각났다. 2학년 교무실, 그 앞에 다가가 섰다. 조용한 복도 덕에 내부의 소리가 작게 들렸다. 돈 줄게, 나랑 잘래? 담임의 목소리였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가방의 주인은 나의 첫사랑 그녀였다.



 “……. ”

 “나랑 만나줄래, 아님 나랑 같이 죽을래?”



 선생이란 사람이 학생에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무엇 때문이었든 간에, 그녀가 정말 급하게 많은 돈이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이후부터 보인 행동을 보고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일주일 간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도움을 주고 싶어져 주말이 지나고 그녀와 대화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월요일부터 학교에 오지 않았다.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다. 원조교제하던 스승과 제자, 그 사실을 안 스승의 부인은 그의 제자를….



 “…쇼하지 마. 재미없어.”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가능하다고 생각해?”



 나의 첫사랑에게 원조교제를 제안했던 담임 선생님, 그리고 나의 첫사랑을 죽인 그의 와이프, 그리고 그들의 아들. 그게 내가 정리한 이창섭의 정의였는데, 사실 이창섭은 그와 동시에 나의 사촌이기도 했다. 이창섭이 직접 저지른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창섭이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이창섭은 내 앞에 꽤 자주 나타났다. 내가 다녔던 학교, 내가 자주 다니는 곳들, 나와 아버지가 사는 집. 이창섭은 모든 걸 알았다. 그리고는 틈만 나면 찾아와서 뻔뻔하게 잠자리를 요구했다.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이네, 내가 비아냥거려도 이창섭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 유의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이창섭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찾아왔고, 나는 그런 이창섭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은 피했다. 이창섭이 혐오스러웠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그의 감정에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불가능한데?”

 “아까도 말했지만 너랑 난 사ㅊ…,”

 “사랑만으로는 안 돼?”



 이창섭은, 날 사랑했다.





-





 나의 첫경험은 아버지였고, 그 후로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아버지와 내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시기라곤 딱 3개월이었다. 어머니에 이어 형마저 집을 나가고 오로지 아버지와 나만 남게 됐던 날, 이제 우리만의 공간이라며 좋아한 아버지는 지독한 관계를 요구했고 나는 아픈 몸을 이끌어 경찰서에 갔었다. 그리고 겨우 3개월이었다. 철창에서 나온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둘이 살기엔 넓은 집에서 내 방을 없애는 거였다. 킹사이즈의 침대 하나만 달랑 있는 안방을 제외한 모든 방문을 잠갔고, 열쇠는 아버지에 의해 버려졌다. 나의 집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곤 거실과 부엌, 욕실과 안방뿐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전혀 없는 감옥이었다. 침대는 물론이고 소파와 테이블, 식탁, 싱크대, 샤워부스, 심지어 세면대까지. 어느 곳 하나 끔찍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학교도 자퇴 처리해 버렸다. 결국 나는 3개월의 자유를 누리자고 날 버린 꼴이었다.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그때가 마지막이었고, 피할 수 없어 익숙해져야만 했다.


 한동안은 밖에 나가지도 못했었다. 아버지가 있는 동안엔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다. 내게 외출이 허용되었을 때는,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난 후였다. 어머니와 형이 집으로 찾아왔던 날부터. 행복한 표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말하던 그들은 손을 꼬옥 맞잡은 채였다. 어머니와 형이 다시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는 이젠 정말 우리밖에 안 남았다며 울었다. 나는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혼자 울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매일 술에 절었고, 나를 조금 풀어 주었다.



 “이민혁.”

 “내 이름 부르지 마.”

 “닥치고 들어.”



 2년 만의 외출에서 가장 처음 본 건 집 앞에 서 있던 이창섭이었다. 이제야 나왔네, 하고 웃는 모습에는 슬픔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이창섭은 나의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매일 찾아왔다. 언제는 나와 자자고 졸라 나를 화나게 만들었고, 또 언제는 아프게 웃어 날 할 말 없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속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이제 조금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날 기다리고 있던 건 조금 더 괴로운 삶이었다. 이창섭은 아버지보다도 더 힘든 존재였다.



 “내가 준 보기는 네 가지였어.”

 “……. ”

 “근데 생각해 보니까 학창시절에 본 시험에서도 보기는 다섯 가지였더라고. 그래서 나도 다섯 가지로 해 주려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눈빛이었다. 이창섭의 눈빛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 감정이 없었다. 동정도, 증오도. 그는 나의 상황을 동정하지 않았고, 나의 모습을 더럽다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견디기 힘들었다. 겪은 사람은 난데, 이창섭이 더 아픈 눈을 하고 있어서.



 “민혁아.”

 “……. ”

 “우리 사랑할래?”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는 눈을 마주하고 있자면 숨이 턱 막혀왔다. 차라리 평생 그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아마 이창섭도 이런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을 거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날 찾아다니는 이창섭의 마음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아는데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 ”

 “나 다 알아. 너도 나…,”

 “한 번 자자고 했지?”



 아직은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안 된다. 이창섭의 눈빛이 슬퍼졌다. 날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슬펐는데, 지금은 더 슬퍼 보였다. 그게 네가 원하던 거 아니야? 그 눈빛을 모른 척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래, 자자. 아버지랑도 해 봤는데 사촌쯤이야.”



 아직은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안 된다.


 제 집으로 날 이끈 이창섭은 현관문을 닫자마자 달려들었다. 부딪힌 등이 아파 어깨를 때리자 이창섭이 그 손을 잡아채 머리 위의 문에 누르고는 다른 한 손으론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과격한 움직임이 화가 났음을 증명했다. 화내면 어쩔 건데, 지가.



 “…야, 살살 좀….”

 “닥쳐.”



 …이제 와서 울면 어쩔 건데, 지가….


 수년간의 관계는 익숙해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몸보다도 마음이. 눈을 감고 있음에도 이창섭의 시선이 느껴졌다. 땀에 젖은 앞머리, 일부러 뜨지 않으려는 듯 꼬옥 감은 눈, 반듯한 코 끝, 그리고 입술. 모든 것을 찬찬히 훑는 이창섭의 눈은 발갛게 충혈되어 있을 것이다.



 “나 다 알아.”



 아직은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안 되는데,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너도 나…,”



 이창섭의 눈빛을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 피할 수 있을 만큼은 피했던 이유, 이창섭이 혐오스러웠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거.”



 나도 이창섭을 사랑했다.





-





 아침 햇살, 포근한 품. 허리 아래의 통증은 여느 때와 같은데 느낌이 달랐다. 낯선 공간, 익숙한 이창섭.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이창섭의 얼굴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찌르르 울리는 허리를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 침대를 벗어났다. 요즈음의 아버지는 술에 절어 살았지만 아침엔 맨정신이었는데, 속과 머리는 전혀 멀쩡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짜증을 많이 냈다. 그 짜증은 오로지 나를 향했었고, 눈을 떴는데 네가 없으면 화가 나니 아침엔 꼭 있으라며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어디 가.”



 속옷과 바지를 주워들었다. 아니, 주워 들려고 했지만 타인의 손에 붙잡혔다. 언제 깬 건지 모를 이창섭과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생각났다. 어제부로 우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너도 나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이제 상관없었다.



 “…입기만 할게.”

 “갈 거잖아.”

 “안 가. 진짜 입기만 할게.”



 이제 상관없잖아. 덧붙인 말을 듣고서야 이창섭의 손이 풀렸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옷을 입는 나의 모습을 진득하게 쫓았다. 겉으로는 싫은 척했지만, 사실 내가 바라던 풍경이었다. 아침을 함께 맞이하고, 나른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이창섭을 느끼는 것. 동시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같이 방을 나서고,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하는 것. 되도록이면 모든 일과를 둘이 함께 하고, 힘들었던 일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이창섭은 내가 옷을 다 입은 뒤에야 뭉그적거리며 일어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옷가지를 주워 제 몸에 꿰어 넣던 이창섭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장난스레 웃었다. 마주 보고 웃을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기분이 좋긴 했다.



 “근데,”

 “응. 말해.”



 내가 입을 열자 이창섭이 대답했다. 이런 목소리는 처음이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창섭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사랑하는 사이란 그런 것인데, 그걸 이제야 알았다.



 “돌이킬 수 없어졌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열여섯 때가 처음이었고, 너도 알겠지만 떨어져 지낸 건 고작 3개월이 다야. 어디다 말해봤자 나만 더러워질 뿐이었는데도, 그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간 곳이었는데. 고작 3개월. 그리고 2년을 감금 당했어. 집 안 곳곳이 다 지옥 같았어. 네가 내 집 앞에서 날 기다렸던 그 2년 동안, 나는 그랬었어. 그보다 더 전에는 어땠는지 알아? - 됐어, 그만 말해도 돼. 뺨에 닿아오는 이창섭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첫사랑은 열네 살 때야.”

 “……. ”

 “너, 열네 살 때 처음 만났어.”



 엄마랑 네 아버지가 남매 지간이긴 하지만 워낙 왕래가 없었잖아. 그러다가 겨우 연락이 닿은 게 그때였고. 기억나? 네가 안녕, 하면서 웃었던 거. 그때 진짜 잘 웃었어, 너. 그래서 자꾸 생각났었나 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야. 그제야 깨달았지. 좋아하는구나, 하고.



 “너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난 엄마 마음 이해해.”

 “……. ”

 “나도 죽이고 싶었거든.”



 가까이 닿아있는 이창섭의 눈동자엔 내가 가득 차 있었다. 식탁 위에 대충 올려놓은 내 손등을 제 손으로 덮고는 조곤조곤 제 이야기를 해 나가던 이창섭이 잠시 입을 닫았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몇 시간 전 이창섭이 그랬던 것처럼.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이란 그런 거니까.



 “네 아버지.”



 그런데 정말, 달라질 게 없을까?





-





 쾅쾅-, 누군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창섭은 집을 비운 상태였고, 그래서 지금 이 집엔 나뿐이었다. 집에 올 사람 없어. 누가 오든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일 테니까 문 열어주지 마. 알았지? 신신당부하던 이창섭이 떠올랐다. 그럼 지금 문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 이민혁!



 그리고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이 툭 떨어짐과 동시에 심장도 쿵 내려앉았다. 온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창섭의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이렇게 몇 주만 더 지내다가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자고 약속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몇 주를 버텨보기도 전에 들킨 것이었다.



 - 여기 있는 거 다 알고 왔어!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오랜만인 만큼 두려웠다. 게다가 멀쩡했다.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아버지는 정말 알고 온 듯 문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창섭이 올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이 문 열면 넌 진짜 죽어! 아버지의 목소리에 결국 나는 발걸음을 떼었다.


 아버지는 덜덜 떨며 나온 나를 보자마자 마르지도 않은 머리채를 붙잡아 끌어당겼고, 나는 아버지의 차 뒷자석에 던져져 지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풀리지도 않은 곳이 뚫리는 느낌은, 고작 일주일 벗어났었다고 매우 낯설어져 버려서 더 괴로웠다. 이런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는 아닐 줄 알았다.



 “넌 절대 못 놔줘.”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온통 이창섭 생각뿐이었다. 보고 싶다, 이창섭.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며 이를 악물었다. 넌 절대 못 놔줘, 이 말을 끝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아버지는 내 오른쪽 발목과 침대를 쇠사슬로 연결해 묶었다. 겨우 침대 아래로 발을 내릴 만큼의 길이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친 나를 그렇게 남겨두고 아버지는 나가 버렸다.



 - 민혁아, 이민혁!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도 조금 더 누워있던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애써 끌어당겨 앉았다. 뒤가 찢어진 것 같았다. 바지를 주우려 허리를 숙이자 신음이 절로 났다.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원을 켰다. 얼마 전 이창섭이 사 줬기 때문에 저장된 번호라고는 이창섭 하나뿐인 핸드폰이었다. 전원이 켜지고 배경화면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 이창섭의 목소리가 들렸고, 꾹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 민혁아. 대답해 봐.

 “……. ”

 - …민혁아.

 “……. ”

 - 내가 거기 갈까?

 “…오지 마.”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창섭의 목소리였다. 얼굴도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겁이 났다. 내가 더럽다는 것을 이미 안다고 해도, 이렇게 더러워진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보고 싶다. 이창섭은 날 보면 안 된다. 그렇지만, 정말, 너무…, 보고 싶다.



 - 민혁아. 지금 갈게.

 “보여주기 싫어.”

 - 너 보고 싶어.

 “……. ”

 - 미칠 것 같다, 민혁아.



 …226129. 나 문 못 열어…. 쓰라린 뒤와 끊어질 듯한 허리가 괴로워 다시 누웠다. 알았어, 지금 갈게. …울지 마. 이창섭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나도 죽이고 싶었거든. 네 아버지.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이창섭이 속삭였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창섭이 있었다. 나의 몸은 말끔했고 옷도 입은 채였다. 쇠사슬도 풀려 있었다. 온 집안을 뒤졌는지 이창섭의 뒤로 보이는 거실이 엉망이었다.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눈치챈 이창섭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민혁아.”

 “……. ”

 “…울지 마.”



 …흐으…,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이창섭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누워있는 나를 끌어안은 이창섭이 내 옆에 올라와 누웠다. 제 옷자락을 붙잡은 나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이창섭도 느꼈는지 한숨을 쉬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조용히, 조심스럽게.



 “…민혁아.”



 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떨림도 서서히 멈춰갈 때 이창섭이 입을 열었다.



 “네가 저번에 물었었지.”

 “……. ”

 “돌이킬 수 없어졌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등을 감싸고 있던 손을 옮긴 이창섭이 나의 턱을 들어 올렸다. 눈이 마주쳤고, 이창섭의 눈동자는 또다시 나로 가득 찼다.



 “달라지는 거 있어.”

 “……. ”

 “돌이킬 수 없어졌다는 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거니까.”

 “……. ”

 “민혁아. 우린 이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나로 가득했던 이창섭의 눈동자가 사라지며 동시에 입술이 맞닿았다. 부드럽게 내 입술을 핥던 이창섭의 혀는 곧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그렇게 두 개의 혀가 얽히다 이내 아쉽게 떨어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창섭의 눈동자가 조금 젖어 있었다.



 “저번에 다섯 가지 보기 중에서, 자는 거 골랐었지?”

 “……. ”

 “남은 건 네 가지야. 골라.”

 “……. ”

 “내가 네 아버지 죽여주면, 넌 뭘 해 줄 건지.”



 젖은 눈동자는 이내 눈물을 흘려보냈다. 이창섭이 울었다.



 “…사귈래?”



 손을 들어 이창섭의 눈꼬리를 닦아 주며 말했다. 그제야 이창섭이 웃었다.



 “만나줄게.”

 “그래.”

 “사랑도 하고….”

 “그래.”



 이창섭의 손이 내 손을 덮었다. 따뜻한 손이었다.



 “…나중엔…,”

 “……. ”

 “같이, 죽자.”

 “그래.”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가 입을 맞췄다.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래서 달라질 수 있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어졌다면, 돌아가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집을 비운 아버지가 뭘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시체를 본 경찰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교도소의 자리 하나 아꼈다며 시체를 치웠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 위해.





* * *





 지금 이 순간, 난 처음이자 마지막 총알을 네게 날리려고 해. 왜 하필 나야, 라는 질문은 하지 마. 난 네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니까.


 난 네게 단 하나의 총알을 바치고, 널 내 심장과 함께 불태울 거야.


 -사랑해.















_fin.















1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