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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민] 62 전력 : 편지

62 전력 : 편지







 형이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저는 이미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후일 거예요. 아, 자살이라거나 뭐 이런 결말은 상상하지 마세요. 형은 긍정적인 사람이라면서 꼭 다른 이에 대해서는 아주 새드엔딩 장편소설을 쓰더라. 막 괜한 걱정까지 하곤 했지. 일찍 결혼했던 형 친구가 몇 달 전에 이혼한 걸 가지고 둘 다 상처 많이 받았겠네, 어린 아들은 나중에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삐뚤어지진 않을까, 그렇다고 자식 생각해서 조금만 더 버텨보지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실례일 텐데 어쩌지, 별의별 걱정 다 한 거 형 기억나죠? 지들 인생인데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면 될 걸 가지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 자살 하늘나라 이딴 건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요. 나 그냥 비행기 타고 멀리 떠나요. 아마 다시는 안 돌아올 거야. 이런 말하면 형이 나한테 너무 미안해할 것 같긴 한데, 이건 사실이니까 말할게요. 내가 떠나는 건 형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도 안 알려줄 거야. 난 다시는 형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싸가지 밥 말아먹은 듯한 말투로 쓰면 형도 정을 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 형한테 실례일 말도 막 해 보려고요. 형도 나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형은 열여덟 살이었고, 저는 이사하는 거 싫다 울고불고 떼쓰며 억지로 끌려왔던 열 살짜리 꼬마였죠. 그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정든 친구들과 헤어진 게 너무 아쉬워 우울한 상태였던 나에게 안녕, 하고 먼저 인사해 주었던 옆집 형. 나는 눈물을 닦고 맑아진 시야로 형과 시선을 마주했고, 형은 반갑다고 해 줬었죠. 형을 본 순간 내 머릿속은 형으로 가득 찼었어. 전에 살던 집, 친했던 친구들은 다 지워지고 오로지 형으로만. 그땐 그저 아, 나는 이런 형의 옆집에 살게 되었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뭐 서론 다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내 첫사랑은 형이에요. 내가 형을 좋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 건 열다섯 살 여름, 형이 제대했던 그날. 그때 생각하니까 갑자기 짜증 나네. 형은 대체 왜 안 늙었어요? 원래 막 고된 훈련에 잔뜩 찌들면 한 십 년쯤은 나이 들어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말투로 어딘가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거나. 그런데 형은 여전히 예쁜 얼굴로, 또 예쁘게 웃으며 다정하게 인사를 했죠. 오랜만이야, 왜 면회 안 왔어어. 그 순간 나는 마치 열 살짜리 꼬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내 머릿속이 또 형으로만 가득 찼었다고. 결국 나는 깨닫고야 말았죠. 형을 좋아하는구나.


 나 더럽죠? 아직도 나한테 정이 붙어 있어요? 더 더러운 얘기도 해 볼까? 내 첫 몽정 상대도 형이야. 열여섯 살 때, 우리 아빠에게서 내가 몽정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더러 드디어 남자가 되었다며 축하해 줬었던 거 기억나지? 그때 내가 처음으로 형한테 짜증 냈잖아. 솔직히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짜증이 나겠어 안 나겠어. 나는 나체의 옆집 형이 내 위에서 허리를 돌리는 꿈을 꿔서 막 심란한데 형은 우리 성재 남자네, 하며 제대했을 때처럼 예쁘게 웃기나 하고. 짜증 내면서 자리를 뜨는 나를 보고 형이랑 우리 아빠가 뭐랬더라. 부끄러운가, 귀엽네 성재. 그때 나는 형한테 묻고 싶었어. 꿈에 형이 나왔는데도, 내가 귀엽냐고.


 형이 나 보고 싶다고 하면 안 되니까 미운 정까지 싹 다 떨어뜨려야지. 내 자위 상대는 언제나 형이었어. 야동을 봐도 형이 그려졌거든. 아래 깔린 여자, 위에서 스스로 허리 돌리는 여자, 아니 그냥 야동 속의 여자는 어떤 형태든 모두 형이었고, 여자에게 취한 남자는 나였던 거야. 사정 직전엔 형 이름을 불렀어. 사실 그 후엔 죄책감에 물들어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 내가 지금 옆집 형을 상대로 뭐 하는 짓인가, 자괴감 쩔었어. 하지만 형을 생각하면 저절로 흥분이 된다는 것은, 나도 통제할 수가 없는 사실이었어. 자위를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형을 또 떠올리고 말았거든.


 어때요, 이젠 내가 좀 혐오스러워져? 형이 날 그저 옆집 사는 귀여운 동생 정도로만 생각했다면 당연히 내 감정이 혐오스럽겠지. 아, 착하다 못해 천사 같은 형이니 혹시나 해서 말해 주는 건데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마요. 나 미워하고 증오하라고 하는 소리가 맞으니까. 사실 나는 이 년 사귄 친구 녀석이 나한테 고백했을 때 존나 때렸거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형 생각하면서 자위하고. 그날 형 꿈꾸면서 몽정까지 했어. 나 존나 쓰레기 같지? 정 다 떨어졌어? 형은 절대 나 보고 싶어 하면 안 돼. 왜냐하면, 형이 날 보고 싶어 하면 나도 형이 보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래서 형은 날 잊고 살았으면 좋겠어. 십 년 간 귀여워해 줬던 옆집 동생 따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걸로 해. 제발 나를 잊어 줘, 형.